택시와 버스, 휴대폰과 네스팟 그리고 푸시와 풀

by PSB(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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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기사가 승객을 찾아오지만 버스는 승객이 정류장을 찾아갑니다. 휴대폰은 안테나가 고객을 찾아오지만 네스팟은 고객이 안테나를 찾아갑니다. 모두 푸시(PUSH)와 풀(PULL) 미디어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저는 투자 대비 효용이 대단히 높은데도 잘못된 마케팅으로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서비스가 KT의 '네스팟'이라고 봅니다. 만약 KT가 택시와 버스의 차이점에 대해 깊은 통찰을 했다면 네스팟은 충분히 킬러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웹서핑과 휴대전화를 비교하자면 전자는 노매딕(NOMADIC)하고 후자는 모바일(MOBILE)하다는 것이지요. 즉 웹서핑이라면 특수훈련을 받지 않은 다음에야 걷거나 뛰면서 사용이 불가능한 반면에, 휴대전화는 얼마든지 이동 중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령 LG오즈폰이나 애플아이폰이라 하더라도 만약 사용자가 통화가 아니라 웹서핑을 원한다면 걸음(혹은 운전)을 멈추어야 합니다. 게다가 웹서핑이 길어진다면 십중팔구 편히 앉을 곳을 찾게 마련이지요. 스타벅스같은...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MIT 교수가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곧 웹서핑의 노매딕한 성격을 이해한다면 굳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와이브로같은 모바일 브로드밴드 인프라를 꼭 구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체로 도심지라면 편히 앉아 쉴 곳이 있게 마련이고 KT가 이런 곳과 광범하게 제휴했다면 네스팟은 와이브로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시 관건은 버스 서비스의 성패가 '정류장을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느냐' 이듯, 네스팟 역시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느냐' 였습니다. 즉 WI-FI 안테나를 찾기 쉬워야 했지요. 만약 이용자 태반이 이미 친숙하게 알고 있는 브랜드와 네스팟을 짝지었다면 어땠을까요?

스타벅스, 맥도날드, 국민은행, SK 주유소... 이 정도의 내셔널 파워 브랜드와 네스팟이 찰떡 궁합을 이루고, 무선랜이 장착된 휴대폰도 출시하며, 또 이들 브랜드와 공동마케팅 역시 강력하게 진행했다면, 아마 한국의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이미 수 년 전에 대중적 서비스로 폭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3G와 와이브로 인프라를 상당 수준 구축해버린 지금은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저는 아직도 이 모델에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3G폰의 웹서핑 속도는 브로드밴드라는 딱지를 붙여주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거든요. 물론 KTX나 버스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모바일 브로드밴드가 유용하긴 하지만, 이 경우도 정해진 트랙을 따라 운행하는 이런 교통수단이라면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게 네트웍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서론이 길었군요.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네스팟이 아니고 택시와 버스, 즉 푸시와 풀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작은 상념입니다.

웹 공간에서도 택시와 버스 서비스가 있지요. 찾아오는 서비스와 찾아가는 서비스. 전자는 RSS, 파드캐스팅 같은 푸시 미디어, 후자는 포털이나 메타블로그같은 풀 미디어입니다.

한국에서 푸시 미디어는 신문-방송을 제외하고는 크게 성공한 경우가 없는데 이는 한국인이 유별나게 개인화를 성가셔하고 기피하기 때문입니다. RSS, 파드캐스팅은 아직 IT에 관심 많은 소수의 파워유저에 한정된 현상이지요.

RSS나 개인화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일반 이용자들이 쉽고 편하다고 느낄만큼 사용자 편의성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호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리 개인화 기술이 물 흐르듯 유려하게 발전한다 해도 최소한 한국에서만큼은 푸시미디어가 웹 공간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 지독하도록 남의 집 사는 형편에 민감하기 때문이지요. 남이야 뭐라 하든 자기 잘 난 맛에 사는 서구의 개인주의자와 달리, 한국인은 역사적, 문화적 배경 탓인지 공동체의 사는 형편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포털, 메타 블로그, SNS 등 어느 사이트를 가도 뉴스가 유별나게 킬러 컨텐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도 바로 공동체의 관심사에 민감한 한국인의 특질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1700만명의 오픈캐스터가 네이버에 1700만개의 뉴스페이지를 만드는 일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리라 예측하는 것이지요. 푸시 미디어에 대한 우리의 거부감은 바로 사회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한국인의 원초적인 두려움에 기반하고 있으니까.

개인화와 찾아오는 서비스, 즉 푸시미디어가 웹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자신만의 둥지에 안주해 있다가는 어느 새 왕따가 될 지도 모른다는 한국인의 원초적 두려움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푸시미디어면서도 풀 미디어의 성격을 갖추도록 스마트하게 보완한다면 혹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