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삐놈' 열풍에 생각해 본 인터넷 리믹스 문화

by PSB(Jean)

대한민국은 목하 '빠삐놈' 열풍이로군요. 오래 갈 열기라고 보지는 않지만 인터넷의 리믹스 혹은 매쉬업 문화와 저작권 사이의 긴장이 스며있는 문제여서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해 일본의 '도진시(同人誌)' 현상을 지켜 본 뒤 인터넷 저작권의 미래가 어때야 할지 잠시 고민해 본 적이 쿱미디어에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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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007년의 명작 드라마 <하얀거탑> 먼저 감상하시지요.

하얀거탑.. 그 후 이야기 - Varix

이 드라마가 한참 인기를 끌때 같이 유명해진 Varix라는 아이디의 젊은 천재입니다. DC인사이드에서 활동한 사람인데 스토리텔링 실력이 보통이 아니지요. <하얀거탑>의 공식 번외편으로 방영해도 손색이 없겠다는 댓글이 많습니다.

Varix의 '작품'이 인기를 끌 때 개인적으로 의문도 있었습니다. <하얀거탑>의 저작권을 소유한 MBC는 왜 이런 명백한 저작권 침해행위에 별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이라면 벌써 저작권법 변호사가 소송에 나섰을 텐데요.

다른 한편으로 Varix는 비록 남의 캐릭터를 이용한 것이지만 자신만의 창의적 예술활동으로 분명히 부가가치를 만든 것 또한 사실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Varix의 작품은 MBC의 것도, 그렇다고 Varix의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남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상 요즘 인터넷서 인기를 얻고 있는 대부분의 UCC 작품이 이런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즉 Remix 된 것이지요.

엄밀하게 따지면 원더걸스의 '텔미'를 춤추고 이를 찍어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리는 네티즌들도 JYP측에 '공연사용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작권법의 규정입니다. 노래방이 노래사용료를 가수와 작곡가에게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니엘 핑크의 일본 망가 문화 탐방은 바로 이 회색지대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창작도 복사도 아닌 이 '3의 지대'... 리믹스 컨텐츠는 사실상 UCC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기에 이는 단순히 일본 망가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웹2.0의 장래와도 직결된 부분입니다.

핑크는 '도진시'라는 불법 사용자 리믹스 망가 시장을 살펴 본 뒤 UCC 비즈니스의 미래를 봤다고 선언합니다. Varix의 <하얀거탑> 리믹스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도진'들은 기존 유명 망가 작품의 캐릭터를 활용해 자유롭게 제3의 스토리를 창조합니다. 이야기들도 상상을 초월하지요.

예를 들어 '마징가 제트와 로봇 태권V가 동성애를 나눈다'는 둥 황당무계하지만 재기 넘치는 번외편을 만든 뒤 프린터로 한정본을 인쇄해 팬들에게 직접 파는 것입니다.

남의 캐릭터에 자기의 이야기를 입혀 돈을 버는 불법이 백주에 횡행하는데도 정작 일본의 망가업자들은 이들을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 UCC 프로슈머들이 일본 망가시장 전체를 키우고 새로운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지요.

UCC 시장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 약 5% 내외의 사용자만이 적극적으로 컨텐츠 생산에 참여하고 나머지 90%이상은 독자로만 남아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핑크는 이들 프로슈머 망가 작가들이 생산자와 독자를 이어주며 일본 망가시장 전체를 키우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미국의 문화컨텐츠 사업자와 미디어들도 이 비즈니스 모델을 본 받을 것을 주장합니다. 벤치마킹 할 만하다는 것이지요.

다시 Varix의 경우로 돌아갑니다. 만약 Varix가 <하얀거탑> 번외편을 자신의 블로그에 계속 연재해 매일 수십만명의 고정독자를 유치하고 구글 애드센스도 달아 월 수천만원의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다면 MBC는 어떻게 나올까요?

아마도 분명히 문제를 삼을 것입니다... 핑크는 바로 이 지점이 인내의 한계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프로슈머들이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서 프로들의 파이를 뺏어가는 순간 이들은 더 이상 이를 묵인하지 않고 법적 대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런 아슬아슬한 균형관계를 과연 유지할 수 있느냐가 UCC의 성공여부를 좌우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