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기획의 영역은 같다.


지난 주에 온라인 광고 기획자로 있는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도대체 디자이너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어떤 때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디자인 요소 등)까지도 주길 바라고,
     그래서 그런 것을 준다고 알려주면  월권이라고 화를 내니 말야...
     디자이너들에게는 어느 정도까지 기획을 줘야해?"

나는 SM의 기질이 있는 걸까? -0-;;; 이상하게도 기획자들이 디자이너들 흉을 보는 것을 듣기를 좋아한다.
우리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오해가 비롯되는지가 궁금해서이다.
대부분 기획자들의 불만은 디자인 "퀄리티" 있지 않다.
이것은 당장은 다행스러우면서도 어쩌면 슬픈 일이다.
대부분의 불만은 디자이너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디자이너들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많다보니,"종합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강한 사람이지
논리적으로 설명에 강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일꺼다.
 
어쨌든 친구의 고민을 듣고 있자니, 불과 얼마전에 있었던 나의 경험이 떠올랐다.
하반기에 있을 개편을 사이트맵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나는 그것을 실컷 듣고 나서, 여지없이 요목조목 이슈들을 제기했다.
게다가 마음에 안드는 feature에 대해서는 이런 말도 서슴치 않았다.

     "아우, 00대리님, 웬일 초심을 잃으셨네요.^^;;; 그렇게 크레이티브하던 기획은 어디갔나요.."
     "크~ 요즘 너무 엔지니어들하고만 어울리시는거 아녀요?  개발로직까지 유저가 알아야해요?"

그리고 며칠 뒤, 다른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디자인을 마치고 그것을 1차로 리뷰를 하는 자리였다.

    나  : "제 생각에는 이 모듈이 중요하긴 하지만 반복적으로 나오니까...컬러가...어쩌구 저쩌구..."
    PD : "하핫~ 어우 이거 약간 00사이트 닮았다. 흐~ 좀 짝퉁같아.. 에린님, 우리 그때 브레인스토밍하고
            막 만든거 있잖아. 거의 애플 같은 하이글로시....그거~ 그런거 나올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 모듈의 모서리가 라운드가 너무 강해서 느낌이 강한것 같고, 그것으로 시선이 좀
            뺏기는 것 같아요"

이런... 디자인 팀장이나 할 리뷰까지 주다니...
닳고 달은 사회생활로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어찌나 "순간적으로" 분하던지!!!!
속으로는 심하다 못해 유치한 생각들이 마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한 기획은 괜찮은거 같아? 그리구 애플이 디자인만 좋은 줄 알아? 췟..' --> 이 따위의 유치한 생각들......
하지만 왜 분했을까? 감히 디자인적인 의견을 줘서...?
아마 의견 보다는 커뮤니케이션 방법 때문이였을 것 같다.
"짝퉁"같다고 했던 단어나, 거절당한 느낌.
디자인은 호감빨이 생명인데, 첫눈에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따위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처음에 개편에서 내가 이슈를 제기했던 기획은 취소 되었고.
기획의 엣지(edge)가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정리가 되었다.
또 뒤에 디자인리뷰에서 나왔던 피디들의 의견도 모두 반영되었다.
막상 디자인을 수정해 놓고 보니, 썩 괜찮기까지 했다. OTL.......
이럴때 정말.....나 디자인 계속 해야할까..? 생각하게 된다.
(디자이너가 좋은 기획아이디어 냈을때 기획자로 계속 살아야할지 회의 느끼신 분 없나요...
슬픔 같이 나눠요...ㅠ.ㅠ)

이 정황으로 볼 때, 몇가지 생각을 정리해본다.

   1. 기획은 너무 어려워서 기획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2. 디자인은 너무 중요해서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다.
   3. 유저앞에서, 유저를 위해서는 기획과 디자인 정확하게 같은 영역에 있다.
      기획과 디자인이 같다고 해도, function의 차원으로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다른 업무를 할 수는 있다.
   4. 그리고 같이 일을 하는 기획자와 디자이너는 평시에 마인드를 맞춰둘 필요가 있다.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서비스의 성패가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답변해본다.
아이디어와 의견을 주는 데는 월권은 없다.
결정하는데 월권이 있는 것이다.
나를 비롯해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다른  function에서 아이디어 주기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결정은 스스로 하지 못한채, 시안을 여러개 만들어서 남이 결정하기를 희망한다.
무엇이 월권인가....?